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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의 전설 '하얀 악마(White Devil)' 시모 하이하(Simo Hayha) 역사의 이해

[시모 하이하(Simo Hayha) 1906 - 2002]                                             

출생지 : Rautajarvi (러시아 국경 근처 핀란드의 작은 마을)

신장 / 체중 : 161cm, 51kg
계급 : 상병 (Corporal) -> 중위 (1st Lieutenant)
사살수 : 542명 (추측으론 최저 510명에서 602까지 존재하지만 핀란드 측에서 제시한 숫자로...)

[겨울전쟁시의 핀란드]


역사상 가장 많은 사살수를 기록한 저격수 시모하이하소비에트 연방과 핀란드의 전쟁인 겨울전쟁(1939~1940)에서 활약한 저격수이다.
소비에트 연방 근처의 핀란드 작은 마을 라우타자르비(Rautajarvi)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와 사냥으로 먹고살았던 가정의 아들로 자라났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혹독한 핀란드의 추위와 환경속에서 야생동물을 추격하고 사냥하는 법을 깨우쳐 갔고 수렵용 소총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갔다.
1925년 1년간 의무적으로 가야했던 핀란드의 병역의무를 이행하기위해 군대에 입대한 시모 하이하는 1년뒤 제대시엔 상병(Corporal)의 계급이 되어있었다.
제대후 시모하이하는 고향에서 핀란드방위군(Suojelskunta, 실상으론 상비군의 성격임) 소속으로 재복무했다.
당시는 핀란드는 만네르하임 대통령의 시절이었고, 소비에트 연방은 스탈린 서기장 시절이었으며, 전 세계는 히틀러가 일으킨 2차 대전의 불길에 휩싸인 기간이었다.
그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게되고, 이에 겨울전쟁(Winter War)이 발발하게된다.
이 전쟁이 시모 하이하의 전설적 전적이 만들어진 전쟁이다.
시모 하이하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가기 앞서 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다.

[2차대전시기 겨울전쟁 - 핀란드 VS 소비에트]                       

겨울전쟁은 소련-핀란드 전쟁이라고도하며 당시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흡수 편입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스탈린은 만네르하임 대통령의 핀란드역시 쉽게 꿀꺽할수있을거라 생각했기에 발발하였다고 볼수있겠다.
이 겨울전쟁의 바탕에는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온 핀란드의 설움이 녹아있다고 볼수도 있겠다.
핀란드는 12세기부터 스웨덴에 거의 지배당하다가 완전 먹혀서 몇백년간 스웨덴 휘하에있었던 전적이 있던 나라이다. 
바사왕조때는 스웨덴이 안정된 독립왕국이 되어 핀란드를 휘하에 두는 바람에, 바사왕조의 위대한 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속칭 북방의 사자)가 17세기 초에는 핀란드를 동방에의 전초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나폴레옹 전쟁 중 핀란드 둘러싼 열강의 외교전끝에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거했고 대공국의 이름으로 통치했다.
오랜기간 외세의 통치를 받은 나라가 핀란드인 것이다. 
물론 그 수백년의 기간중 숲과 호수의 나라인 핀란드도 국권 회복운동을 펼치기는 했었다.
제정 러시아시절인 1902년에는 핀란드군이 러시아군에 편입되고 러시아어가 공용어가 되는등 수많은 세월을 러시아화 정책하에 살아야만 했으나, 그 시기는 시벨리우스의 애국교향시 핀란디아가 1899년 11월에 탄생하여 핀란드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지피고 1904년 핀란드를 점령한러시아의 핀란드 총독 보브리코프를 암살하는등 핀란드 민족운동의 시기이기도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하자 핀란드는 12월 6일 독립을 선언하여 공화국으로서 독립을 쟁취한다. 그리고 1920년 러시아도 이를 승인하였고 오랜 세월 외세에 지배당했던 핀란드는 정식으로 독립하여 평화의 시기를 맞이할 것을 기대하게된다.
허나 어렵사리 쟁취해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스탈린이 히틀러의 나치스를 막아주겠다는 빌미로 1939년 11월 30일 핀란드를 침공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모 하이하가 활약했던 겨울전쟁의 발발이었다.
1939년 11월 30일 당시만 보면 핀란드군(보병 약 337000~346000명{3개군 9개 사단}, 기동 가능전차 33대, 항공기 110여대) VS 소련군(보병 약 460000명{4개 집단군 26개 사단}, 전차 3200여대, 항공기 3800여대)이었다. 더군다나 총 병력이 아닌 핀란드 국경지대의 병력은 162000명 정도 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겨울전쟁을 보면 화염병의 영문 명칭인 몰로토프 칵테일의 어원을 알수있다.
당시 소련군은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를 폭격하기도 했고 이때 소이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국제 사회가 규탄하자 소련의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우리는 원조용 빵을 투하했다"고 발언한다.
이에 수백년간 남에게 점거당하며 쌓아온 울분을 터트린 핀란드인들은 "그럼 이 술이나 받아 쳐먹어!!!"하면서 술병에 벤젠과 알코올을 넣고 불을 붙여 던지는 화염병을 소련군 퇴치에 사용하였고, 그리하여 화염병의 영어 이름이 몰로토프 칵테일이 되었다고한다.
각설하고 숫자상으로는 소련에 비교가 안됬지만 핀란드 병력은 오랜기간 점령당했던 생활로 게릴라전에 도가 텄었고, 흰 보호색 군복을 입은 스키부대와, 러시아보다 더 추운 날씨가 큰 도움이 되었다.
더군다나 겨울 전쟁 당시는 유난히 다른 년도보다 더 추워서 평균기온 -40℃를 기록하는 등, 소비에트보다 더 추웠던 날씨에 살던 핀란드인들에게 날씨도 도움을 주었던 시기였다.

[핀란드 군의 스키부대]


[소비에트 연방의 소이탄]


[핀란드의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

[영화 <겨울전쟁> 중 몰로토프 칵테일에 불타는 소련군 전차와 전투씬]

하지만 결국 봄이 되며 추위가 수그러들고 지원해주던 주변 국가들도 등을 돌리자 만네르하임 대통령은 울며 겨자먹기로 1940년 3월 6일 정전협정과 3월 12일 모스크바 평화조약을 체결하게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소련에 카렐리야 지방을 비롯하여 영토의 10%를 소련에 할양했는데
, 나중에는 이때의 원한으로 인해 히틀러의 제3제국과 친근하게 지내게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핀란드는 이후에도 소련과 계속 싸우게된다.(겨울전쟁시기만큼의 타격은 당연 무리였고 나중에는 계속 발렸지만 말이다)
아무튼 겨울전쟁 시기 3만명의 핀란드군 사상자 VS 17만명의 소련군 사상자라는 결과는, 소련이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의 저력을 보여준 전적이었다.
이후 1941년 6월 22일 일요일 새벽 3시 히틀러가 스탈린을 상대로 바바롯사(Operation Barbarossa) 작전을 수행하여 독소전이 발발 2차 대전의 동부전선이 형성되게된다.
이때 히틀러와 스탈린이 싸우니 '우리도~' 하면서 핀란드도 소련에 반발하여 전쟁을 하게되는데, 나폴레옹의 패인처럼 러시아의 추위로 인해 제대로 월동준비가 안되있던 독일군은 모크스바 점령직전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독일군 40만명의 사상자 VS 소련군 100만명의 사상자로 소련에 패하고말아 덩달아 참전한 핀란드는 위기에 봉착하게된다.(너무나 처절한 소비에트군의 승리와 전적을 보노라면,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서부전선보다는 이후 베를린 레이스가 펼쳐졌던 동부전선쪽이 주된 제3제국을 패퇴시킨 병력이라 생각된다)
바바롯사 작전을 잘 막아낸 스탈린의 소비에트는 무시무시한 반격준비를 하였고, 결국 핀란드는 1939년과 1940년에 걸쳤던 겨울전쟁이후로는 소비에트에 쪽도 못쓰고 발리기만했다.

[시모 하이하와 겨울전쟁]                                                                                   

//아무튼 다시 시모하이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핀란드방위군(Suojelskunta)이었던 시모 하이하는 콜라 강 (Kollaa River) 근처 JR34 제 6중대에 배치되게된다.
이 곳이 바로 '콜라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무후무한 전과를 올리게 된 지역으로, 그 당시 콜라 강에서만 핀란드 군은 12사단 즉 약160000명의 소련군과 대치했고 시모하이하 본인은 4000명을 상대로 31명의 동료들과 함께 게릴라 전을 펼쳤다고한다.
그리고 전설과 같은 시모하이하의 전적과 그 휘하 부대원들의 전적으로 콜라강은 1940년 3월 종전까지도 핀란드의 점령지로 유지된다.
불과 3~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시모 하이하 본인은 최소 500명 이상을 저격했으며  적이었던 소련군이 그에게 인정해주는 기록도 505명으로 알려져있는 등 가히 전설이라 불릴만한 전적을 이루었다.
그렇기에 그를 소련군은 하얀악마(White Devil)라고 불렀다.(또는 하얀 사신 하얀죽음등으로 불리웠죠)
그는 모신나강 M28(Mosin-Nagant M1891/30의 핀란드 버전)과 서브머신건 Suomi K31을 이용하여 수많은 소련군을 저격했고 위대한 전과를 올렸다.
허나 1940년 3월 6일 소련병의 총탄이 턱에 명중하여 폭발, 혼수상태에 빠지고마는데, 그가 코마 상태에 빠진 1주일뒤 3월 13일 소련이 물러나면서 전쟁은 끝나게된다. (물러났다고는 해도 따뜻한 봄이 되면서, 동맹국들이 지원을 줄이면서 점점 밀리기 시작한 핀란드 입장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전협정과 모스크바 평화조약을 맺은 상태이니 승리는 소비에트쪽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국토의 10%를 소비에트에 할양한 굴욕적인 조약으로 정전을 했으니 말이다)
겨울전쟁의 종전 이후 시모하이하는 병상에서 깨어나게 되고, 전후 한달뒤 핀란드 육군 매너하임 원수로 부터 표창과 함께 중위로 특진하게된다.
허나 부상의 여파로 신경계에 무리가 와서 이 전설적 저격수는 군인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했다.
이에 하얀악마는 전역할수밖에 없었고, 이후 전쟁이나 저격수로서의 활동기록은 없다.
다만 그는 고향에서 개 사육과 사슴사냥을 하면서 남은 평생을 살았다고 하며, 2002년 4월 1일 97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일상 생활에서는 단점이나 몸을 숨기는 저격의 임무에서만 장점이랄수있던 단구(161cm)와 애용하던 총인 모신나강 M28의 성능(러시아산 Mosin-Nagant M1891/30의 핀란드 버전으로 우너 오브 사우전드(One of Thousand)의 인위적인 선발을 통해 개조한 0.5 MOA에서 1 MOA 사이의 고성능을 자랑하는 볼트액션 라이플)을 제외하고는 모든것이 열세였던(병력과 보급의 열세) 상황에서 이루어 낸 그의 놀라운 전과는 대단한 것이다.
단구 덕에 참호나 매복지에서 얼굴을 내밀지 않고도 상대를 확인하여 저격할수있었던 시모하이하.
그는 평소에 병사들에게 스코프를 쓰지 말라고 했는데 스코프 렌즈의 반사광이 위치를 노출시키며 스코프사용시 머리를 내밀어 눈을 대야하기에 적에게 포착되기 쉽다는 이유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한다.(물론 그런 무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병사는 거의 없었으나...) 그리고 실제로 시모 하이하는 겨울전쟁 당시 실제로 스코프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눈과 가늠쇠 만으로 저격에 임했다고한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두꺼운 흰색의 위장복만을 입고, 소비에트연방의 바실리 자이체프와는 달리 엄폐물도 거의 없는 설원에서,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고 가늠쇠만으로 저격하여 이만한 성과를 올린 시모 하이하는 정말 대단한 저격수였다. 
그렇기에 그는 세계 1위 저격수로 기억되고있다.//

[모신나강 M28(Mosin-Nagant M1891/30)]


[수오미 K31(Suomi K31)]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시모하이하가1998년 핀란드 한 잡지와 한 인터뷰중 일부를 올리겠다.

[말년의 시모 하이하]

 

Q: 어떻게 그런 명사수가 되셨습니까? (How did you become such a good shot?)

A: 연습했지요. (Practice.)

Q: 그런 놀라운 기록은 그럼 어떻게 달성하셨죠? (And about your morbid records?)

A: 까라고 해서 깠지요. (I did what I was told to as well as I could) [직역 : 내가 할수있는것 뿐아니라 명받은것도 했다.]


그의 전적을 보면 저격수 영화인 <에너미 엣더 게이트>(바실리 자이체프(세계 저격수 2위)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가 떠올라야할것 같은데, 왜 마지막 인터뷰를 보니 <해안선>이 떠오르는지...
"까라면 깐다"라... 한국 군인도 "까라면 깐다"라는 정신을 강조하니 시모 하이하처럼 될 수 있을까?

[에너미 엣더 게이트]


[장동건 주연의 영화 해안선의 실제 포스터 "까라면 깐다" "까래서 깠는데..."]



P.S. 마지막 단락의 // //로 묶인 파트와 맨 마지막 인터뷰의 한국식 해석 (까라고 해서 깠지요) 그리고 시모 하이하의 총기사진은 네이버의 시나브로(XiNAVRO)님의 글에서 인용한 파트입니다. 시나브로(XiNAVRO)님께 인용을 허락해 주신점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덧글

  • ArchDuke 2011/01/02 15:41 #

    시모하이하의 그것 명언이죠. 까래서 깠습니다
  • BLUE-PSY 2011/01/02 16:05 #

    까라서 까라면 못할것도 없습니다.

    -군대에서만.
  • 타이탄 2011/12/20 10:10 # 삭제

    어느나라 군대던 까라면 까는게 기본... 사설무장조직이 아니라면 말이죠
  • 2012/02/04 21:06 # 삭제

    잘 보고 갑니다 ㅎㅎ

    근데 오타땜시 뒤의 감동이랄까.... 줄어든듯
  • 칼슈레이 2012/02/05 09:39 #

    예전에 쓴글인지라 오타가 좀 많았어요 ㅜㅜ 언젠가 보완을 해야하는데 말이죠 ㅎ;;
  • 치타코 2012/02/08 10:25 # 삭제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퍼가두 되죠!?
  • 칼슈레이 2012/02/08 11:24 #

    방문 감사합니다 ^^ 퍼가셔도 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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